[4891] 4891 : 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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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되고, A와 나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팝콘 같은 군것질거리를 사고 기다리고 있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A는 혹시 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냐고 물었다. 혹시 A의 친구가 근처에 있던 걸까? A와 나는 주위를 살펴봤지만, 익숙한 얼굴은 없었다.

 

 우리가 예매한 좌석에 앉고 스크린에 몇 개의 광고가 지나갈 때까지 A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거나 눈을 굴려 다른 사람을 흘끗 쳐다보는 등 뭔가 불안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괜찮냐고 묻자 A는 살짝 멋쩍어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 턱을 만졌다. 내가 그를 신경 쓰는 것이 미안했는지 영화가 시작되자 그는 정자세로 영화를 감상했다.

 

 이 영화, 대히트를 치거나 한 건 아니지만 커뮤니티에서 영화 내 대사 덕분에 간간이 화제가 되어 이야기된 것은 알고 있었다.

 독재 정권 세계에서 하층민 노동자인 소녀가 주인공인 디스토피아 영화로어린 시절부터 불온 세력이라는 누명으로 부모를 잃게 되어 혼자서 공장에서 일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됐다. 

 어느 날, 소녀는 물품을 구하러 자주 다니던 곳에서 읽는 것을 금지한 책을 발견하고 만다. 그런 소녀의 집에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그들은 독재에 저항하고자 하는 세력이었다. 저항 세력은 책을 가져온 시점부터 소녀의 신변이 위험하다며 그들과 함께할 것을 권하지만, 소녀는 어린 시절 부모의 말로를 떠올리며 거절한다.

 그러나 일하던 공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독재 정권에 의해 누명을 받고 공장에서 그대로 목을 매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저항 세력을 찾아간다.

 독재 정권을 상대로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친구의 죽음을 떠올리며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라고 중얼거린 소녀에게 저항 세력의 리더가 해준 말이 인상 깊었다.

 

- 많은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죽기를 선택하지. 하지만 나는 겁쟁이라서,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그 괴로움이 죽음보다 무섭지 않았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참 용기 있는 사람들이야.
 
- 하지만, 요즘 생각하고 있다. 죽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소녀는 그 리더의 말을 가슴에 새겨 넣는다. 독재 정권을 향한 시위에서 리더는 사망하지만, 이후 성인이 된 소녀가 단상에 나와 그의 말을 인용하며 그의 의지를 잇는다.


- 죽음을 선택하는 건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더 용기 있는 일이 아닐까요?


 그 장면에서 나는 눈물이 조금 나왔다. 마치 가족과 같았던 리더를 진심으로 기리는 소녀의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연인끼리 보러온 영화인데 로맨스나 코미디 영화 같은 게 아니라 이런 영화라니 참 A다운 선택이다.

 엔딩 크레딧이 흐르고 관내에 빛이 들어오자 나는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말하려 A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A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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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 : 박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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